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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브레 미스터팍64

"내 봉급으로라도 공부시키겠습니다” 선생님의 한마디 저는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제법 하는 아이였습니다. 늘 1등을 하는 학생은 아니었지만 반에서 대략 5등 정도는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렇다고 얌전한 모범생만은 아니었습니다. 중학교 시절을 떠올리면 추석 전날 친구들과 쥐불놀이를 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깡통을 구하고, 불을 피울 땔감을 준비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돌아다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철없던 시절의 추억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부끄러운 기억도 하나 있습니다. 중학교 때 친구들의 가방을 면도칼로 조금씩 찢는 장난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될 행동이었습니다. 그 일로 문제가 생겼지만, 그 사건을 통해 저는 뜻밖의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담임선생님이 나를 정말 아끼고 계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분이 박덕규 선생님이셨습니다.. 2026. 9. 23.
65세가 되어야 알았습니다, 돈보다 중요한 것 어린 시절의 저에게 돈은 단순히 물건을 사는 수단이 아니었습니다. 돈이 없다는 것은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을 수 없다는 것, 갖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없다는 것, 때로는 다른 아이들에게는 평범한 것이 나에게는 특별한 것이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저는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을 살았습니다. ‘점심’이라는 말조차 낯설게 느껴졌던 기억이 있고, 배가 고파 길거리에서 치약을 주워 먹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러니 어린 저에게 돈은 꽤 절실한 것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 65세가 되어 돌아보면, 가난이 제게 남긴 것은 돈에 대한 욕심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일찍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라면 세 봉지를 여섯 식구가 먹어야 했을 때 어머니는 칼국수를 넣었습니다. 양은 .. 2026. 9. 23.
내 안에는 아직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살고 있습니다 65세가 되어 제 인생을 돌아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는 부모님에게 무엇을 물려받았을까? 재산이나 물질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나도 모르게 제 몸과 마음속에 자리 잡은 삶의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제 아버지는 엄격하셨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그 엄격함이 좋기만 했을 리 없습니다. 아버지가 어렵게 느껴질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제가 한 가정의 가장이 되고 사업가가 되어 수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아버지의 모습이 제 안에도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것, 한번 시작한 일은 어떻게든 책임지려고 하는 것, 힘든 상황에서도 버텨내는 것. 돌이켜보면 저는 평생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는 조금 다른 분이셨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 2026. 9.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