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제법 하는 아이였습니다.
늘 1등을 하는 학생은 아니었지만 반에서 대략 5등 정도는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렇다고 얌전한 모범생만은 아니었습니다.
중학교 시절을 떠올리면 추석 전날 친구들과 쥐불놀이를 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깡통을 구하고, 불을 피울 땔감을 준비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돌아다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철없던 시절의 추억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부끄러운 기억도 하나 있습니다.
중학교 때 친구들의 가방을 면도칼로 조금씩 찢는 장난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될 행동이었습니다. 그 일로 문제가 생겼지만, 그 사건을 통해 저는 뜻밖의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담임선생님이 나를 정말 아끼고 계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분이 박덕규 선생님이셨습니다.
중학교 3학년 무렵 우리 집 형편은 매우 어려웠습니다. 부모님의 수술비까지 필요해지면서 집안 사정은 더욱 힘들어졌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학교 공부를 잠시 중단하는 것까지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때 박덕규 선생님이 어머니를 설득하셨습니다.
“이 아이는 공부를 계속해야 합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자신의 봉급으로라도 저를 계속 공부시키겠다는 뜻을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에게 저는 수많은 학생 가운데 한 명이었을 겁니다. 게다가 친구 가방을 면도칼로 찢는 철없는 행동까지 했던 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혼내야 할 때는 혼내셨지만, 그 아이의 잘못만 보지 않고 그 아이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보셨던 것 같습니다.
“나는 너를 포기하지 않는다.”
누군가 나를 그렇게 믿어준다는 사실이 한 아이를 바꿀 수도 있었습니다.
저 역시 그 일을 겪은 뒤 많이 변했던 것 같습니다.
만약 그때 선생님이 어머니를 붙잡지 않았다면, 제가 학교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을까요?
그 뒤 제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긴 세월이 지난 지금도 박덕규 선생님이라는 이름을 기억합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수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그중에는 잠깐 스쳐 지나가는 사람도 있지만, 한마디와 한 번의 믿음으로 한 사람의 인생 방향을 바꾸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게 박덕규 선생님은 그런 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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